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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치

구미시 도개면 농암 김주, 단계 하위지, 경은 이맹전 위패를 모신 월암서원

구미시 도개면 월림리에 있는 월암서원은 忠臣不事二君의 충정공 농암(忠貞公 籠巖) 김주, 사육신 단계 하위지(丹溪 河緯地)선생, 생육신 경은 이맹전(耕隱 李孟專) 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월암서원은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지만, 지난 2010년 복원되었다.

 

 

구미시 도개면 월림리에 있는 월암서원 표지석

 

 

월암정에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애일당'으로 서원을 관리하는 건물이다.

 

 

낙동강 기슭 얕은 절벽에 자리잡은 농암서원, 구미보 위라서 낙동강 물이 가득 차 보인다.

 

 

월암서원의 정문인 솟을 삼문으로 보인문 현판이 보인다.

 

 

보인문을 통해 들어가면 월암서원 편액이 붙어있는 구인당이다. 즉 仁을 구한다는 집으로 '일생일사의상동', '충신불사이군'등의 주련(柱聯)이 새겨져 있다.

 

 

정갈하게 석축을 쌓고 그위에 지은 구인당 

 

가파른 산 기슭에 지은 지형적인 영향으로,본당과 외삼문간의 거리는 매우 짧으며 위패를 모신 상의사(尙義祠) 까지 3단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구인당 뒷벽 일부가 무너져 있다. 

 

 

서제인 존묘제

 

 

구인당 위에 동제와 서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동제인 수인제

 

동제와 서제 사이로 구인당 지붕이 보이고 그 너머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동제인 수인제가 자리해 있다.

 

서제인 존묘제

 

 

월암서원의 가장 높은곳에 구미 출신의 유학자인 김주·하위지·이맹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상의사(尙義祠)가 있다. 월암서원은 가파른 비탈에 세워졌기에 석축이 한껏 그 위용을 더한다.

 

농암 김주는 1392년(공양왕 4)에 사절단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일을 마치고 압록강에 이르러,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중국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고려사에 따르면 그는 가족에게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하였으니 내가 강을 건너가면 몸둘 곳이 없다"라는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사육신은 세조에 의해 쫓겨난 단종을 다시 왕으로 세우기 위해 모의를 했다가 먼저 탄로나 죽음을 당한 여섯 명의 충신이다.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박팽년이며 사육신에 비교해서 살아서 절개를 지킨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은 생육신이다.

 

사육신 단계 하위지, 생육신 경은 이맹전의 고향이 구미다. 하위지 선생의 묘소는 구미 선산읍에 있고 그를 기리는 유허비는 형곡동 시립도서관 공원내에 있다.

 

월암서원은 변두리 도개면 끝 쪽에 있어 찾는 이도 드물고 안내 시설과 설명이 많이 부족한 상태로 그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측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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