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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사 역사

대구 중구 남구 허소 후보 14인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가문 후손 국회의원 출마

이번 22대 총선 대구 중.남구에 출마하는 허소 후보는 3대에 걸처 14인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 독립운동가문인 왕산 허위, 방산 허훈 의병장,성산 허겸, 범산 허형 가문의 직계후손이다.


민족시인 이육사가 바로 범산 허형의 외손자이며 왕산가문과 안동 석주 이상룡 초대 국무령 가문과는 겹사돈 사이로 대한민국 3대항일 가문중 두가문이 구미와 안동에 있다.


허소 후보 선조들의 독립운동 투쟁은 대단했다.

당시 평리원 서리재판장(대법원장), 의정부 참찬등을 지낸 고관대작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1만여명의 13도 창의군을 결성해 일제 통감부를 치기 위해 서울 진공작전을 펼친 왕산 허위 의병총대장

(왕산 허위 순국후 1년만에 이토 히루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

 

토지 3,000여 마지기(약 60만평)을 팔아 독립 군자금으로 지원한 방산 허훈 의병장

만주로 망명가서 초대 부민단 단장을 지낸 성산 허겸

노구에 온 가문의 만주 망명을 이끈 범산 허형등 선조들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표상이다.


뿐만 아니라 구미 임은동 허씨가문의 독립운동사를 살펴보면 안동 임청각 석주가문과 겹사돈으로 엮어있고 왕산 허위의 직계제자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와 김좌진 장군이 연결되어 있다.


스승인 왕산 허위 순국 후 독립투쟁활동을 하던 박상진 의사는 군사력과 자금 필요성을 깨닫고 1911년 신의주와 안동현에 안동여관을 설치했으며 독립운동기지가 필요하자 자신의 전답 900마지기를 팔아 대구에 상덕태상회를 설립했다.

이 상회는 박상진·김덕기·오혁태 이름을 딴 곡물상회였다.
마침내 그는 1915년 음력 7월 15일, 32세에 대구달성공원에서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총사령에 추대됐다.

그때 백야 김좌진 장군을 부사령으로 임명한다. 김좌진 나이 26세때였다. 의형제를 맺은 박상진은 김좌진을 군자금 약 10억3천만원을 지원하여 만주로 파견한다. 청산리 대첩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독립전쟁의 정신적 뿌리는 왕산 허위의 진충갈력 기상이었다

 

또한 민족시인 이육사와 그 형제들도 구미 임은동 허씨 집안의 외손자이며 이육사는 외삼촌 허발, 허규 선생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항일 영웅 열사로 추앙받고 있는 동북항일연군 3로군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도 바로 구미 임은동 허씨 집안이며 이육사의 시 광야에 나오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은 육사의 외당숙 허형식 장군을 흠모해 지은것이라고 학계에서 주장하고 있다.


오늘 대구 들렀다가 반월당 네거리에 자리잡은 허소 후보 캠프에내걸린 현수막을 한참 찍었다.

그중 고르고 골라 한장 올리고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네거리에서 선거운동을을 펼치고 있는 허소후보의 모습을 담고 왔다.


그가 상대하는 후보는 일베글을 퍼다나르고 5.18 망언을 일삼는 썩어빠진 정신 상태의 국힘 도태우 후보다.

왜놈들 무찌르던 선조들의 기상을 이어받아 큰 기개로 대구시민들의 정신 올바르게 깨치도록 해주길 바래본다.


국힘은 도태우 공천 취소 하고 독립운동가문의 정기를 대구시민들애게 고취시키도록 대구 중남구지역 무공천 하도록해야 하는게 맞다고 본다.

대구 최중심가 반월당 네거리 허소 후보 캠프

 

대구에서 선거 운동중인 허소 후보

허소 후보의 5대조 할아버지 허훈 의병장 공훈록

방산 허훈 의병장은 도산서원, 병산서원 원장을 지냈다.

허소 후보의 가계도
왕산 허위 의병장 가계도

 

 

 

 

구미 임은허씨 가문의 14인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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