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사 역사 썸네일형 리스트형 의병장 왕산(旺山) 허위(許蔿)의 맏형 방산 허훈 선생 경북 구미출신의 13도 창의군 의병 총대장 왕산 허위 의병장은 고종황제 당시 평리원 수반판사, 재판장(대법원장), 의정부 참찬, 비서원승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관직을 버리고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포문을 연 의병전쟁에서 최고봉을 장식한 인물이다. 그의 나라사랑 정신은 안중근 의사와 직계제자 대한 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에게 전승되었다. 왕산 허위의 큰형 방산 허훈(1836~1907)은 당시 땅 3,000 마지기를 팔아 동생 성산 허겸과 왕산 허위의 의병 창의 군자금으로 보태고 자신도 직접 진보 의병장으로 참전했었다. 3대에 걸처 14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구미 왕산 허위 가문 https://t.co/AVsQp6ONaW pic.twitter.com/Ko5PlMEf2m — NewsPro (@The.. 더보기 [경북여행]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의병장 방산 허훈의 흔적을 찾아 길을 떠나 외지에 나서면 문득 인근의 유명한 명소를 들리고 싶어진다. 경북도청의 배후 주거지 예천군 호명면 일대 클린 환경행정 조성 상황을 살펴보고 짬을 내 인근 병산서원을 다시 찾아갔다. 병산서원 만대루 (사진/ⓒ전병택) 한국고전번역원 고전 포럼 중에서 발췌 한 학자의 일생에서 초학과 만학은 다르다 학문을 시작하는 시기가 초학이라면 학문을 완성하는 단계가 만학이다. 초학과 만학의 시기는 학자마다 다를 수 있지만 아호의 출현이 한가지 준거점이 될 수 있다. 명종대 예안의 산중에서 비로소 '퇴계'로 거듭난 이황의 일생에서 그 이전 중종대의 이황은 퇴계 이전의 퇴계였다. 순조대 강진의 유배지에서 비로소 '다산'으로 거듭난 정약용의 일생에서 그 이전 정조대의 정약용은 다산 이전의 다산이었다. 퇴계 이전의 퇴계.. 더보기 왕산 허위 가문 만주로 망명한 왕산가 범산가 여성들 (허은 여사 회고록에서) 1910년 나라를 잃자 경북의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그 망명대열에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석주 이상룡(독립장)의 부인 김우락(애족장) 여사, 며느리 이중숙 여사등 임청각의 여성들, 백하 김대락(애족장), 일송 김동삼(대통령장) 일가의 부인과 며느리 손부 손녀딸 그리고 구미의 왕산 허위(대한민국장) 일가의 여성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항일투사와 가족을 지키는 것이 곧 나라를 되찾는 길이라 여겼고 이들은 만주에서 서로 혼인 관계를 맺으며 대를 이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그중 구미 출신 왕산 허위 일가에서 만주로 망명한 여성들의 기록을 찾아 본다. 왕산 허위는 성균관박사, 주차일본공사수원(駐箚日本公使隨員), 중추원의관, 평리원수반판사(平理院首班判事) 등을 거쳐 1904년에는 오늘날의 대법원.. 더보기 민문연 구미지회 봉오동 전적지 두만강 도문시 용정시 윤동주 생가, 철혈광복단 15만원 탈취기념비 방문 만주 독립운동 사적지를 탐방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가 주최한 만주답사 기행은 동북 3성의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의 주요 도시와 백두산을 오르는 답사. 등으로 이어지는 답사 여행의 4박 5일째 여정은 도문시와 봉오동 전투지 용정의 윤동주 생가를 찾는 길이었다. 연길을 떠나 도문시로 향하는 길은 G12 고속도로를 이용한 약 50km거리의 한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양강도 삼지연군 북동계곡에서 발원 발원하여 북쪽으로 향하던 하던 두만강은 지린성(吉林省) 투먼(圖們)에 이르러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 지점에 도문(圖們)시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물길을 돌린 두만강은 동해로 곧장 내달린다. 연길시 인근에서 부르하통하를 합처진 해란강도 동쪽으로 50여리 물길을 이끌고 난 후 바로 이곳 도문에서 두만.. 더보기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과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왕산 허위 가문 청산리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사이에 청산리 일대에서 홍범도(洪範圖)의 연합부대와 김좌진(金佐鎭1889 -1930)의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이 연합하여 백운평전투(白雲坪戰鬪)를 비롯하여 10여 차례 일본군과 싸운 전투이다. 김좌진은 1915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전선에 나섰다. 대한광복회의 목적은 독립전쟁을 통해 조국을 독립시키는 것이었다. 광복회원들은 원수 일본을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의무이며, 강토회복과 광복은 당연히 도래한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대한광복회 부사령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만주로 떠난 김좌진은 1919년 3월 「대한독립선언서」에 대표로 서명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이상 독립기념관 자료) 독립기념관 사료를.. 더보기 민족문제 연구소 구미지회 구미출신 독립투사 유적지 만주답사 기행 중국정부에서 항일영웅열사 300인에 공식 발표할 정도로 대표적인 남한 출신 독립운동가 허형식 장군(동북항일연군 3로군 총참모장 겸 3군장)의 유적지를 찾고 만주 독립운동 사적지를 탐방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가 주최한 만주답사 기행은 동북 3성의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의 주요 도시와 백두산을 거치는 등으로이어지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백마타고 오는 초인 허형식 장군 77주년 추모식 중국 흑룡강성 경안현 대라진 현지 동북항일연군 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許亨植 1909~1942)이 경호원 왕조경과 진운상을 데리고 소부대 현지지도를 다니던중 1942년 8월 3일 흑룡강성 경안현 청송령 소릉하 계곡에서 일 monament.tistory.com 하얼빈에서 동북열사기념관과 동북항일연군 박물관을.. 더보기 백마타고 오는 초인 허형식 장군 77주년 추모식 중국 흑룡강성 경안현 대라진 현지 동북항일연군 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許亨植 1909~1942)이 경호원 왕조경과 진운상을 데리고 소부대 현지지도를 다니던중 1942년 8월 3일 흑룡강성 경안현 청송령 소릉하 계곡에서 일제 관동군과 괴로국인 만주군에 의해 추격을 받아 교전중 33세 나이로 전사한다. 1915년 음력 3월 장군이 6살 때 가문 전체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망명하면서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를 떠난지 27년 만이다. 허형식 장군보다 8살 어린 같은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출신 박정희(1017년~1979)는 이 무렵 25살로 일본군이 세운 만주군관학교 예과를 졸업하여 나중 일본군 장교가 된다. 박정희는 왜왕에게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한다며 제국주의 일본에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 더보기 왕산 허위 가문 독립운동가 기념동상 이전 설치에 대한 정리 광복회 대구지부와 왕산 허위 선생의 손자 허경성(93) 옹은 201년 10월 14일 광복회 대구지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왕산 광장과 왕산루 명칭을 원안대로 복원하고 창고에 보관된 왕산 가문 열네 분의 동상을 물빛공원 내에 설치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장세용 시장이 설치 장소로 지정한 왕산 기념관은 지대가 협소하고 경사지고 한적한 곳으로 여기에 동상을 설치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선생과 왕산 가문의 14인의 독립운동가 기념사업을 무산시키며 왕산의 장손자 허경성 부부에게 고함과 욕설을 한 장 구미시장은 왜곡된 역사 의식을 바로 고치기 바란다. /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