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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 허필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5적’은 모두 재판장 판사 출신 ㅣ제국주의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5적’은 모두 판사 출신들이었다. 1905년 을사년에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으로 우리는 을사늑약이라고 칭한다. 을사오적이란 을사늑약 체결에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된 말이다. 그런데 이 을사오적은 모두 판사출신이었다.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1858.07.17.-1926.02.12.) 전라북도와 평안남도 재판소 판사 출신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1858.12.07.-1916.06.20.) 평리원 재판장서리,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1865.09.30.-1919.12.16.) 평리원 재판장(현재의 대법원장.. 더보기
왕산 허위 가문 만주로 망명한 왕산가 범산가 여성들 (허은 여사 회고록에서) 1910년 나라를 잃자 경북의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그 망명대열에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석주 이상룡(독립장)의 부인 김우락(애족장) 여사, 며느리 이중숙 여사등 임청각의 여성들, 백하 김대락(애족장), 일송 김동삼(대통령장) 일가의 부인과 며느리 손부 손녀딸 그리고 구미의 왕산 허위(대한민국장) 일가의 여성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항일투사와 가족을 지키는 것이 곧 나라를 되찾는 길이라 여겼고 이들은 만주에서 서로 혼인 관계를 맺으며 대를 이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그중 구미 출신 왕산 허위 일가에서 만주로 망명한 여성들의 기록을 찾아 본다. 왕산 허위는 성균관박사, 주차일본공사수원(駐箚日本公使隨員), 중추원의관, 평리원수반판사(平理院首班判事) 등을 거쳐 1904년에는 오늘날의 대법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