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8경(景)에 꼽히는 선유동 계곡(1코스)과 용추 계곡(2코스)을 이어 걷는 문경 선유동천 나들길 1코스 시작점은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 기념관에서 시작한다.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 동상 (사진/ⓒ전병택)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은 세종대왕의 형님인 효령대군의 19세손으로 조선왕족 출신으로 항일의병전쟁을 이끌었다.
운강의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다. 그리고 왕산 허위의 사위 이기영(李起永), 왕산이 의병을 일으킬 때 비서로 활동하였고 이후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 활동한 둘째 형 이기상(李起商)과 김산의진에서 활동한 맏형 이기하(李起夏)는 모두 효령대군의 18세손이다.
건국훈장은 1등급 대한민국장, 2등급 대통령장, 3등급 독립장, 4등급 애국장, 5등급 애족장 그리고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이 있다.
대한민국장은 중국인 5명을 제외하면 25분이 서훈받았다. 경북에는 구미 왕산 허위, 문경 운강 이강년, 성주 심산 김창숙 선생등 3분이며 의병활동으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서훈은 왕산 허위, 운강 이강년, 면암 최익현 3분이다.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은 조선 왕족 출신으로 의병전쟁을 이끌었으며 왕산 허위 선생은 성균관 박사, 평리원 서리재판장(대법원장), 의정부 참찬, 비서원승(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고관대작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의병을 일으켜 13도 연합 창의군을 결성하고 의병 전쟁을 이끈 분이다.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96번지 운강 이강년 기념관 (사진/전병택)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은 을미의병전쟁(1896년), 정미의병전쟁(1907~1908)을 이끈 분이다.
1910년 경술통문에 雲崗 이강년 선생의 아들 3형제(이승재, 이긍재, 이명재)와 이기찬 선생의 長子 이강하(李康夏) 선생과 李起夏 선생이 동지인으로 나온다. 이기찬은 왕산허위, 허겸 등이 참여한 김산의진의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활약하였다.
1910년(융희 4)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의병들을 재규합하고자 시도하였다. 김두활(金斗活)‧김철상(金喆相)‧노병대(盧炳大)‧안재극(安在極)‧유시연(柳時淵)‧이긍재(李兢宰)‧이명재(李明宰)‧이승재(李承宰)‧이은화(李殷和)‧이응수(李應洙)‧장한문(張翰文)‧정희섭(丁喜燮)‧주구상(周九相) 등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다시 궐기할 것을 계획하고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격문이다.
경술통문 동지인 명단에 이강년 의병장의 아들 이승재,이긍재,이명재 그리고 왕산 허위의 사위 이기영의 맏형 이기하의 이름이 나온다 (사진/의병연구회)
운강 이강년 기념관 전경
운강 이강년 기적비
운강 이강년 기념비
신도비
운강 이강년 기념관 경내에 있는 의충사. 이곳은 운강 선생의 영정을 모셔노흔 사당이다. 매년 9월에 향사를 지낸다.
1880년 무과에 급제해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로서 선전관이 되었다. 당시 관복이 전시되어 있다.
이강년 의병대장이 한 장의 한지(韓紙) 위에 한문과 그림으로 작성한 의병전술 편제도 속오작대도 편제
새로 복원한 운강 이강년 의병장의 초상화, 제작비가 7천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운강 이강년 기념관 내부 전경
1908년 7월 2일. 의병 70여 명을 거느리고 청풍으로 진군하던 운강은 금수산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경찰대 등의 연합부대의 포위망에 갇혀버렸다.
두 시간 동안의 악전고투 끝에 불행히도 왼발 복숭아뼈에 적탄을 맞고 그만 사로잡히고 말았다. 붙잡힌 운강은 너무나 비통하여 이렇게 읊었다.
탄환이 너무나 무정하구나!발목이 상하여 더 갈 수가 없구나.차라리 심장에나 맞았던들욕되지 않게 바로 죽었을 것을.丸子太無情 환자태무정踝傷止不行 과상지불행若中心腹裡 약중심복리無辱到瑤京 무욕도요경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이 피체되어 재판을 받았던 평리원(현 대법원). 을사오적이란 을사늑약 체결에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된 말이다.
그런데 이 을사오적은 모두 판사출신으로 이완용을 제외한 4명은 평리원 재판장 출신이었다.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5적’은 모두 재판장, 판사 출신 https://t.co/MNO45g3LJT pic.twitter.com/zYcjTAIlAy
— NewsPro (@TheNewsPro) March 3, 2020
평리원 수반판사, 서리재판장을 지낸 왕산 허위 선생은 이 을사5적을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선 을사오적 무리들과는 달리 성균관 박사, 중추원 의관, 평리원 서리재판장(대법원장), 의정부 참찬, 비서원승(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하고도 위급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1907년 경기도에서 의병을 모아 포천, 양주, 철원, 장단, 연천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해산군인까지 받아들여 1만여명의 전국연합의병인 ‘13도 창의군 결성하고 군사장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일제 통감부를 치기위해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했던 왕산 허위와 운강 이강년 선생은 평리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했다.
정미의병 13도 창의군 군사장 왕산 허위는 선봉장을 맡았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출한다. #왕산허위 #의병대장 #왕산로 #동대문 #서울진공작전
— 흐르는 소릉하 (@metempirics) May 31, 2020
평리원 재판장(대법원장), 의정부 참찬등 고위관직 출신으로 유일하게 의병을 일으킨 구국선봉장 왕산 허위 선생 pic.twitter.com/p4OOZaEHGy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
창의대장 | 지역 | 의병수(약) | 비고 (훈·포장) |
|
총대장 | 관동대장 이인영 | 경기도 | 1천명 | 대통령장 |
군사장 | 진동대장 허 위 | 경기도 | 2천명 | 대한민국장 |
관동군 | 민긍호 | 강원도 | 2천명 | 대통령장 |
호서군 | 이강년 | 충청도 | 5백명 | 대한민국장 |
호남군 | 문태수 | 전라도 | 1백명 | 대통령장 |
교남군 | 박정빈 신돌석 |
경상도 | 미상 | 애국장 대통령장 |
진동군 | 권의희 | 경기황해 | 미상 | × |
관서군 | 방인관 | 평안도 | 80명 | × |
관북군 | 정봉준 | 함경도 | 80명 | 독립장 |
총 | 48진 | 1만여명 |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의 묘소는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산 11번지에 있다. 운강의 순국 후 시신은 유언대로 서울 서초구 방배동 효령대군 묘역에 모셔졌다가 그해 11월 유림의 발의로 충북 제천 북면으로 이장했다.
1944년 제천 북면 운강의 묘 앞으로 일제가 도로를 만들려고 할 때 묘소가 없어지는것을 막기 위해 뜻있는 상주 유림들이 목숨을 내걸고 일제의 감시를 뚫어 밤중에 묘를 옮겨와 지금의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로 이장하였다.
운강 이강년기념관은 선유동 계곡으로 들어 가는 길에 있으며 바로 인근에 그 유명한 조계종 특별수행도량인 희양산 봉암사가 있다.
가은읍내에 있는 석탄박물관을 둘러 보는 길에도 운강 이강년 기념관을 아울러 방문 해보기를 권한다.
운강 이강년 기념관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박열의사 기념관도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